한국 영성예술의 가능성을 엿본다

이 호재 (종교학, 전 성균관대 교수)

무한하고 영원한 본체의 떨림을 감지한 후 유한하고 일시적인 창조적 현상으로 재현하고 표상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감각과 이성을 초월하는 무형의 존재를 유형적으로 형상화하는 번뇌와 고통의 작업을 예술적 표현이라고 한다면, 유한의 형상을 통해 무한의 존재를 보고 느끼고 듣는 신비적 경험은 관객이 향유하는 희열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홍영숙의 작품세계는 무한한 존재의 ‘떨림’을 관객에게 ‘울림’으로써 영성예술의 가능성을 선보인다. <돌아오는 만다라>를 대표작으로 하여 <쉬멍, 놀멍>하며 감상하자는 이번 전시회는 한국의 영성예술로 지구마을을 꽃단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작가의 예술세계를 통하여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녀의 작품을 알게 된 건 페이스북이라는 인터넷 공간이다. 어느 날 “뒤집어지는 태극”을 본 순간 아주 친숙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매일 올리는 작품을 감상하면서 작가의 작품세계에 한국의 종교적 영성의 색채가 흠뻑 묻어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무한의 존재와 유한의 현상을 연결해 주는 ‘영성’적 기제는 작가와 종교학자가 ‘종교·예술’, ‘예술·종교’로서 만날 수 있는 촉매제이자 불가분의 연결고리가 된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자유’롭게 남에게 구속당하지 않는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이런 그의 천성에 최욱경(1940-1985)의 저항정신과 ‘광부화가’라 일컬어지는 황재형의 민중의식의 영향, 그리고 뉴욕 유학 중에 지도교수인 존 워커(John Walker) 등 많은 외국 작가들의 예술세계를 직접 체험한다. 당시 지도교수인 존 워커는 그녀를 ‘한국의 조지아 오키프( Georgia O'Keeffe)’라고 부른다. 또한 글렌 골드버그(Glenn Goldberg)도 그녀가 즉석에서 그린 작품을 보고 천재성을 공개적으로 말해 주위의 부러움과 주목을 한 몸에 받아 가면서 유학 생활을 하였다. 작가는 유학 시절에 한국에 소개조차 되지 않았던 템페라 기법을 배운다. 작가는 “그 섬세한 기법에 제 손이 착 감기는 느낌이라 좋아했다”라고 한다. 특히 작가의 작품활동을 눈여겨보고 있던 황재형이 한국의 물성에 맞는 템페라의 사용을 권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된다. 잘 알다시피 템페라화는 빨리 마르고 튼튼하며 내구성을 가지고 유화구와 달라서 건조하면 색조가 더 밝아진다는 특색을 가진다. 템페라는 ‘색조가 밝아지는’, 원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발현 현상을 가진다. 바로 이런 발현하는 색상의 특성은 ‘신난다’라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영성을 잘 표현하는 예술재료로 안성맞춤이다. 한국의 사유체계는 수용과 회통과 창발의 특징을 가지기 때문이다.

아픔과 눈물과 번뇌를 초극하지 못한 작품은 위선이고 허위이다. 배부른 새는 울지 않는다. 수난과 고난의 가시밭길을 초극하지 못한 작품은 값비싼 화랑에 전시되었다고, 가식적인 화려한 미술평론이 있다고 빛나지 않는다. 잠시 인기를 끌지 모르나 철이 바뀌면 쓰레기장으로 간다. 관객의 가슴을 울리고, 역사가 기억하는 작품은 무한의 본체를 관객에게 보여주려는 ‘마음이 가난한’ 구도자로서의 예술가이다. 흘린 눈물이, 멍든 가슴의 생채기가 작품을 집어삼키지 못하는 작품은 관객을 절대 감동시키지 못한다. 예술가는 이런 면에서 고독한 구도자이다. 모친의 긴 병 수발을 지극정성으로 감내한 효녀로서의 작가는 2015년부터 삶의 고향인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그의 구도자적 정신은 <원 형상의 눈물방울>(1990년 초)에 집약되어 있다. 예술 구도자로서 흘리는 고난과 고통의 눈물방울은 동과 서의 단절, 여성과 남성의 차별, 모더니즘과 포스터모더니즘의 문명사적 혼돈을 치유하려는 구도정신의 결정체이다. 그것이 원형의 눈물이라는 진주이다. 이 예술가의 고난에 동참하려는 분은 <After Over There>(1999) 앞에 침묵으로 당당히 서 보시라. 게다가 작가는 존재의 뿌리를 탐구하고 내면의 의식을 표상화하기 위해 구상화가 아닌 추상화로서 자신의 중심을 찾는 예술의 장을 펼친다. <Where Are You...?>(1993), <Where It Should Go?>(2014), <Where It Comes From?>(2015), <다시, 또 다시>(2015, 2020), <점, 선, 면의 해체>(2015), <점, 선, 면의 이탈>(2015), <해체되는 면 구성>(2017), <중심으로부터>(2018), <아주 오랜 옛날부터>(2018-2019), <색들이 나타나기 전>(2006-2019), <떠오르는 질문>(2016), <혼몽의 시간 너머>(2019)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자아와 타자의 정체성을 직시하고, 기원을 탐구하면서 유한의 시간과 공간을 궁구한다. 심지어 무한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색 이전의 색상과 시간 너머의 비(무) 시간이라는 시공에서 형상을 구성하는 유한한 점과 선과 면조차 해체하고 이탈시키며, 유한한 우주(캔버스)를 변형시키면서까지 본체의 존재를 작가의 현의식에 응축하여 형상화하고 관객에게는 초의식의 희열을 선사하려는 영성적 예술실험을 한다. <돌아오는 만다라>를 보시라. 한편 작가는 <우주의 기를 모으는 방법>(2016), <혼을 부르는 소리>(2016), <기도하는 손>(2017), <십자가를 따라>(2017), <색으로 그린 기도문>(2020), <동굴의 소리>(2022-2013) 등을 통해 무한의 존재를 작가의 내면적 의식에 충일하게 쌓아서 축적한다. 이런 의식이 압축되어 작품으로 응축하고 발산하는 과정에는 고통과 희열이 뒤따른다. 고통이 희열이고 희열이 고통이다. 영성예술의 절정이다.

그의 작품의 주제는 단순하지 않고 다채롭고 다양하다. 한국이라는 캔버스에 다양한 종교전통과 현재적 풍경과 세계적 사건들이 중첩적이고 중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몇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종교전통으로는 <호접몽>(2016), <야무진 할렐루야>(2016), <공자 헌정곡>(2018-2019), <초혼>(2020), <다시 그린 몽유도원도>(2017), <‘옴마니반메훔’과 함께>(2019), <반가사유상>(2017-8) 등이 있다. 현재적 풍경에는 <열려라 풍경>(2017), <심심한 풍경>(2017), <불안한 풍경>(2019), <뭉쳐진 풍경>(2019), <나팔꽃 기억>(2019-2022) 등의 작품이 있다. 뿐만 아니라 <사이보그 해바라기>(2016), <포스트모더니즘의 날개>(2017), <그림자 인간>(2017), <갤럭시..?>(2019), <판데믹 부적>(2020), <코로나 단풍>(2020), <코로나 크리스마스>(2020), <판데믹부적 흉내>(2022) 등의 작품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는 예술가의 면모를 엿보인다. <신경질 난 느낌표>(2016), <터질 것 같은 물음표>(2016) 등은 엉뚱하다 못해 웃음이 절로 터진다. 한국의 해학이다.

작가는 유독 빨강, 파랑, 노랑의 빛의 삼원색을 좋아한다. 천생 한국의 작가이다. 삼원색은 고대 한국인이 전승해 온 삼태극의 근본 바탕이다. 삼태극의 삼원색을 바탕으로 백의민족의 상징인 태양이라는 밝음(ㅂㆍㄺ)을 온몸으로 끊임없이 발현하고 확산시킨다, 영성의 폭발이다. 그의 작품이 풍류의 바람과 같이 휘몰아치고 울부짖어도 마음은 오히려 정중동, 동중정의 울림을 연출한다. 왜냐하면 돌고 도는 다중일(多中一), 일중다(一中多)의 무수하고 무한한 원형의 형상으로 조형화하여 평화와 공존의 삼원색을 적절히 배치하였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유독 생명의 색인 초록이 많이 보여 온화하고 평온한 느낌을 더해 준다.

<태초에...>(2020)는 하늘나라의 만다라이다. 태극의 본체에 여러 생명이 녹색으로 둘러싸인 우주공동체, 생명공동체, 평화공동체를 나타낸다. <태극의 기원>(2019)을 보면 빨강, 파랑, 노랑의 삼태극에서 빨강과 파랑이 원형으로 확산되며 노랑을 무의식적으로 은폐시키고 있다. 한국의 태극은 노랑을 드러내지 않고 빨강과 파랑의 태극을 표현한다. 그러나 태극의 배후에는 노랑이 늘 떨리고 있다. 그러면서 <흩어지는 태극>(2019)에서는 숨겨져 있던 노랑조차 자막이 사라지듯이 빛을 잃어가며 해체된다. 역(易)의 세계에서 빨강의 평등과 파랑의 자유는 천지비(天地否)의 나쁜 운세를 나타낸다. 그러나 작가는 <뒤집어지는 태극>(2021)에서 64괘 중 가장 이상적인 괘인 파랑과 빨강의 위치를 회전시키면서 지천태(地天泰)의 평화로운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프랑스 대혁명의 구호였던 ‘자유, 평등, 연대(박애)’를 연상시키는 <자유, 평등, 평화>(2020)를 삼원색만으로 표현하여 노랑의 평화세계 안에서만 파랑의 자유세계와 빨강의 평등세계가 공생할 수 있다는 인류사의 화두를 제시한다. 예술의 혁명이다. 또한 필자의 책에서 글로써 미처 표현할 수 없는 선맥(仙脈))의 부활우주와 선맥(僊脈)의 변화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작가의 작품을 사용한 적이 있다. 부활우주라고 표현한 <Circular Dance>(2016)는 빨강과 파랑의 색깔이 혼합된 영원의 보라색을 드러내면서 숨겨진 노랑이 선명하게 발현하는 홀라키적 전일주의(holarchic holism)를 형성한다. 이런 원형의 춤은 갈등과 분열과 모순을 원 속에서 해체하면서 노란색의 회오리바람으로 <바람의 노래>(2020)를 부르고 있다. 변화우주이다. 작가는 삼원색을 통해 한국의 태극과 삼태극의 기원, 우주와 인류 역사의 지향점을 거침없이(!) 표현해 내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였을까? 작가는 인터뷰에서 “우리네 수묵화 같은 정신세계를 강조하는 이론이 답답해서 모든 색의 기본인 삼원색을 사용한다는 인식으로 색채에 관한 논란을 잠재우고 싶었어요. 그 방식이 제가 지니고 있는 민족성으로서의 태극과 만나 삼태극을 심화시키게 된 듯합니다.”라고 말한다. 삼원색은 한국을 상징하는 본바탕이자 세계를 아우르는 평화와 생명과 자유의 색이다. 작가는 가장 한국적인 삼원색이 세계성을 가진 보편색임을 즉발적으로 감지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이는 <색으로 그린 기도문>(2020)에서 이런 느낌을 향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 전시회의 대표작인 <돌아오는 만다라>(2022-2023)는 그간 치열하게 구도한 작가가 우주의 존재와 합발(合發)한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만다라’는 무한의 존재와 일체화된 깨달음, 즉 법계(法界)의 만덕(萬德)을 구비한 의미로 정밀한 대칭과 조화의 극치로 표현하지만, ‘돌아오는’ 만다라는 정치하고 정적인 ‘만다라’와 달리 적요한 우주심(宇宙心)의 골방을 해체하고 뛰쳐나오는 역동성을 보인다. 왜 그럴까? 한편에서는 흩어지는 삼원색을 붙들어 놓고는 <쉬멍, 놀멍>(2020)을 요청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달려라 달려라>(2022)를 외치며 불확실한 빨강으로 뒤덮인 혼란한 세상에 평화의 노란 색깔을 온몸에 휘감으며 잠자던 동방의 푸른 말이 우주의 장막을 뛰쳐나오며 관객에게 “나와 같이 달려라 달려”를 외치고 있지 않은가! <동굴의 소리>는 작가의 아우성이다. 피 고통이 담긴 작가의 울부짖음이 생명의 찬가로 승리의 환호성으로 들리는 관객은 작품의 진수를 맛본 것이다.

팽창하는 우주의 ‘떨림’에 작가의 이성과 오성을 포월한 영성이 공명하여 ‘울림’으로 어우르고 아우른 작가 홍영숙은 이번 전시회가 한국적 영성을 폭발시키는 영성예술가로서 우뚝 자리매김하는 큰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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